어런 저런 이야기

어머니 추어탕 VS 남원 추어탕

할아비의 자명종 2022. 5. 8. 11:46

 1964년 10월 한  가을철에 , 내가 살던 (남원에서 약 30리 떨어진) 농촌마을에서 저녁식사 때 아버님이 나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  OO야 이번 일요일에 미꾸라지 잡아야겠다" 

" 적어도 한 바케쓰는 되어야 한다"

 

 매년 가을철이면 우리 집에는  남원읍내 기관장들이 우리 집에 오셔서 추어탕을 드시는 년례모임이 있었습니다

 어떤 이유로 이 모임이  시작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이 날은 남원군수, 경찰서장, 방송국 사장, 농협지점장 등 많은 분들이 우리 집에서 추어탕을 드시고 가셨습니다

 

추어탕의 주 재로인 미꾸라지를 잡는 것은 중학교 2학년 학생인 내가 해야 할 일이었고, 맛있는 추어탕을 만드는 일은 어머니가, 그날 방문한 손님을 접대하는 일은 아버지 몫이었습니다

 미꾸라지 잡기 전날, 집앞에 있는 논의 배수로에 유입되는 물줄기를 막아 배수로에 있는 물을 줄여 다음날 수로에 있는 물을 퍼내는 일이 쉽도록 작업을 한 후 

일요일 배수로에 10미터 간격으로 뚝을 쌓고 밑에 있는 배수로부터 세숫대야나 바가지를 이용하여 물을 퍼낸 다음 배수로 뻘에 숨어있는 미꾸라지를 잡기 시작합니다

위와 같은 작업을 반복하여 미꾸라지를 잡으면 약 서너시간이면 큰 세숫대야 가득 미꾸라지를 잡을 수가 있습니다

내가 잡아온 미꾸라지를 어머니는 해감(미꾸라지가 머금고 있는 뻘을 소금을 넣어 제거하는 작업)을 하고 삶은 다음 학독에서 갈아 완전 죽 같이 만든 후 가는 체로 걸러 남아있는 굵은 뼈를 제거합니다 

 이 미꾸라지 죽에 무청시레기,된장, 고사리, 대파 등 여러 가지 양념과 같이 푹 끓여서  그 위에 고명으로 영양부추를 올린 거로 기역이 납니다

 손님들이 오는 토요일 늦은 점심시간은 모든 식구가 총동원되어 식사를 준비합니다 

 우리깉은 애들은 이런저런 잔심부름 할 일이 있게 마련이니까요

식사가 마무리되어 갈 무렵, 모임의 대장인 군수께서 같이 참석한 세무서장에게 한마디 합니다

 "어이 세무서장, 아까 올 때 바쁜 일이 있어 먼저 일어서야 된다고 하지 않았나?"

" 네, 그렇지 않아도 지금 막 나가려 든 참입니다"

  세무서장이 차를 타고 남원으로 출발하면 우리 집 광에 잘 숨겨 두었든 우리 집 보물 막걸리가 손님들 상으로 나가며, 미꾸라지 잡을 때 덤으로 잡혔던 붕어가 노란 튀김옷을 입고 안주로 나갑니다

 이때만 해도 일반 가정집에서의 막걸리 제조는 탈세로 엄하게 처벌을 받는 시기였고 그 감독 기관이 세무서였기 때문에 세무서장이 자리를 피해 준거지요

 

 정말 맛있게 먹었던 어머니표 추어탕이었는데 이제는 어디에 가도 그런 추어탕을 먹을 수 없는 게 큰 후회가 됩니다   

  왜 어머님 생전에 어머님이 만들었던 레시피를 받아 적어 두지 않았는지, 왜 그 맛의 노하우를 알려고 하지 않았는지 후회가 많이 됩니다 평생 얻어먹을 줄만 알았지 그 맛을 계승하고 전하는 것을 게을리한 탓이겠지요

 또 우리가 젊었을 때에는 추어탕이 서민 음식이어서(지금도 서민 음식이지만) 우리 어머니의 레시피로 만든 추어탕은 원가가 너무 높아서 상업화하기가 어렵고  비싼 가격으로는 경쟁력이 없기 때문에 사업화하기가 쉽지 않은 때였습니다

몇 년 전 나보다  십 년 어린 조카와 춘향골 남원추어탕을 같이 사 먹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할머니 추어탕이라면 얼마면 사서 멱을 것 같냐고 물어보았습니다 그 조카도 어릴 때부터 할머니 추어탕을 먹고 자라서 그 맛을 아주 잘 알기 때문에 항시 추어탕을 즐겨 먹던 조카였는데 내 질문에 4만 원 이하라면 사서 먹고 싶다고 말합니다 이 이야기 당시 우리가 사 먹던 일반 추어탕이 1만원이었으니꺄 4배의 가격에도 팔릴 수 있는 추어탕이었는데............

 

혹시 제 이 글을 읽고 추어탕을 더 맛있게 만들고 싶은  분이 있다면 제가 아는 우리 어머니의 단편적인 레시피를 알려드리려 합니다

1. 눈에는 보이지 않으나 어머니의 추어탕에는 소고기의 곱창이 숨어 있습니다 삶아서 아주 작게 채썰어서 집어넣어 보이지는 않지만 소고기의 향이 납니다

2. 무청 시래기가 너무 질기지 않아야 합니다  어떻게 시래기를 만들어야 질기지 않는지는 모릅니다 암튼 질기지 않은 시래기만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3. 일반적으로 추어탕 파는 가게에서는  들깨가루가 따로 그릇에 담아 나오는데 어미니 추어탕에는 끓일 때 미리 들어가 있었습니다. 단 그 비율은 모릅니다

4. 미꾸라지의 특유의 향을 제거하기 위한 어떤 향신료도 사용하지 않습니다, 그런 향신료를 쓰는 것은 추어탕 애호가에게 절대 해서는 안될 일입니다

 

지금도 왜 그 당시 남원군의 기관장들이 매년 우리 집에 와서 추어탕을 먹었는지 그 이유를 모릅니다 그리고 그걸 알고 있는 가족도 없습니다  그 당시만 해도 우리 집은 그냥 평범한 남원에서 30리 (정확히 13킬로미터) 떨어진 농촌 마을이었고 우리 집은 음식점이 아닌 농사꾼의 집이었는데 말입니다

제가 가끔 어머님이 만들어 주시던 추어탕이 생각나면 춘향골 남원 추어탕을 방문합니다 제가 이 추어탕에 주는 점수는 80점입니다 어머니 추어탕을 100점으로 세팅하면....

 

2022년 5월 8일 어버이의 날에 이 글을 씁니다 

 살아 계실 때 좀더 잘해 드릴 걸 하는 마음이 더 가슴에 밀려옵니다